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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정길 총장, 국민일보 '내가 만난 하나님'편 기사 게재
작성자 강전도 작성일 2012-12-24 조회수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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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하나님-김정길 배화여자대학 총장] 기독교 정신 구현위해 ‘주께 하듯’ 세상 섬겨 / 4월 14일(수)자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기도, 그것은 내 삶의 자양분이었다. 외가는 독실한 크리스천 집안이었다.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목사셨다. 치유 사역자로 유명한 유보라 전도사가 이모님이시다. 하지만 어머니는 믿지 않는 가정으로 시집 와서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다. 아버지 형제가 9남매였는데,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제사 때마다 꿇어앉아 절을 안 하고 있으면 큰아버지들이 혀를 차며 꾸지람을 하셨다. 어머니는 그런 집안 어른들을 지성으로 섬겼다. 삶으로 신앙을 보이셨다. 어머니 믿음의 울타리 속에서 우리 형제들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배재학당을 거쳐 연세대 법대를 다니던 나는 4·19혁명과 6·3항쟁에 온몸으로 참여했다. 정치를 향한 꿈을 키워나갔다. 감리교청년연합회 회장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청년회장 등을 맡아 국내외적으로 적극 활동했다. 졸업 후에는 일간 신문사를 거쳐 정당에 들어가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장래 문제를 놓고 오랫동안 기도한 끝에 문교부로 자리를 옮겼다. 행정부처로 오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나는 다른 이들 앞에 나서는 정치를 포기했다. 다른 가치의 삶을 살기로 작정했다. 결코 요직에 마음을 두지 말자. 배려와 헌신, 봉사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아닌가.’

문교부 고등교육국 과장으로 정책을 입안하는 일에 주력하던 중 갑자기 서독대사관에서 일하라는 명을 받게 되었다. 외무부 시험까지는 불과 2개월 남짓. 섬기는 중앙감리교회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드리고, 교회의 작은 공간으로 짐을 싸들고 들어가 매일 새벽기도를 하며 공부에 몰두했다.

1977년, 37세 젊은 나이에 국장급인 교육참사관으로 본(Bonn)에 있는 대사관에 부임했다. 외교활동을 하면서 틈틈이 본 대학교에서 정책학을 공부했다. 남북관계가 냉혹하던 시절이었지만 대학에서 북한 출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그들 가운데는 노벨상 후보자 물망에 오른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한국에 오면 과학계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한국 정부에 보고했다. 79년 4월 서울로 초청했다. 그들 중 일부는 한국에 남아 과학기술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남북관계가 경색됐던 당시로서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그러나 나는 믿음 가운데 그 모험을 감행했다. 믿음이 담대함을 줬다.

81년에는 문교부 실무대표로 서울 올림픽 유치에 정열을 쏟았다. 국무총리실 기획연수단장, 국제교육진흥원장, 국립교육평가원장 등 어떠한 직책을 맡게 되더라도 ‘주께 하듯’ 일했다. 국정교과서 대표이사직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쳤다.

그 후 기독교 인재 양성에 여생을 바치기로 서원했다. 천안대학교(현 백석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한 이후 현재 배화여대 총장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되돌아보니 오직 기도와 믿음이 내 인생의 힘이었다. 그렇다. 믿음이 힘이다. 내가 만난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시는 분이다. 오직 그분을 향한 믿음만이 필요했다. 아침 이슬 같은 청년들이 이 믿음을 갖게 해 달라고 오늘도 기도한다.

정리=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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